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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하니까 덮으라고요?
  • 편집국
  • 등록 2017-08-30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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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인숙(익산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

 

 27년 전 일이다.

스무살의 내 언니가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려 혼자 집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청년이 지나가던 척 하더니 되돌아와 해코지를 하려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언니는 청년을 논바닥에 패대기칠 덩치가 되었고 두려움을 떨치고 대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내가 이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작은 시골 동네에서 못된 짓을 한 청년에 대한 분노도 언니의 용기도 아니었다.


“남이 알까 겁난다. 이 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사건의 전말을 들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반응이었다.

 

물론 성폭력미수범에 대한 욕설과 언니에 대한 걱정과 위로가 있은 뒤에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물론 중학생이었던 나는 어떤 반문도 할 수 없었다.

 

두 여자 어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성폭력피해는 다행히 면했지만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것을 누가 알게 되면 소문은 네가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네가 결혼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은 물론이고 우리집안에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일은 여기서 덮는 것이다.’

 

두 사람이 주는 메시지였다.

그 말에 들어있는 참혹한 진실과 어떻게 할 수 없는 바위 같은 무거움 때문에 내 몸이 얼어붙는 듯 했다.

 

가해자를 응징을 했을 때 생기는 보복에 대한 피해를 말하며 피해자인 언니가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 사건 은 결말이 났다.

 

그 날 이후 우리가족은 이 일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나에게 생긴 일이라면  꼼짝없이 성폭력을 당했을 사건에 대한 결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두려웠다.


지난 8월 15일 익산시민의 힘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익산역에 세워졌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익산역에 세우냐’

‘우리도 베트남전쟁에서 이런 피해를 주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은 말 안하고 피해 받은 것만 말 하냐’

‘가족들을 생각해봐라.

그 가족은 오가며 동상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플까’ ‘부끄럽고 안 좋은 일인데 굳이 이렇게 까지’        


 ‘일본군위안부’ 성폭력문제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 창피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군위안부 동원령을 내린 일본정부와 일본군대와 직접 위안부를 만나 강제적인 성폭행을 한 군인들은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걸까?

 

 끔찍한 일을 하고도 모든 책임과 죄책감까지도 피해자에게 돌리는  집단과 개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가해자들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왜 여전히 우리는 폭력피해를 당한 여성에게 입을 다물 것을, 수치심을 느낄 것, 네 행실의 문제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일까?


정희진은 “이 세상에 완전범죄가 있다면, 그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는 문화와 미풍양속으로, 전통으로 가족주의나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때문에 가해자는 피해의식을 피해자는 죄의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베트남전에서 우리나라 군인이 행한 범죄는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아서 반복된 것이다.

전쟁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피해에 대한 참상을 알리고 잘잘못가리고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 질 때 반복되지 않는다. 

 
다시한번 질문해 본다.

우리는 무엇을 창피해 해야 하는 것일까?

성폭력피해경험을 창피해야 하는걸까, 아니면 성폭력피해 여성에게 네 탓이다.

 

좋은 일 아니니 입 다물라고 말하는 지배집단의 언어를 창피해야 하는 걸까?
위안부 할머니들은 ‘수퍼급 창피함’을 무릎 쓰고 왜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을까? 

자신의 경험이 창피함이 아니라 분노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증언으로 다시는 정부나 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일어나는 성폭력피해가 없기를 바라서이다. 

익산역 평화의 소녀상은 진정 창피해야 할 사람이 창피함을 느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발디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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