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는 금강과 만경강이 감싸고 있는 도시이다. 익산시민 83%가 만경강 유역에서 살고 있다.
익산시에서 만경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무한의 문화자원이다.
만경강은 과거 굴곡이 심한 자연 하천이었다. 이를 일제 강점기 일제는 조선 최초로 1925년 ‘만경강 개수공사’(직강화)를 착공하여 1938년 완공하였다. 그 직강화 공사로 인하여 굴곡이 심한 부분은 지금도 옛 강으로 남아있다.
익산시 관내 옛 강은 8개소나 되는데 ‘만경강N’ 회원들의 이번 답사코스는 동자포 옛 강이다.
동자포 옛 강은 U형 또는 항아리 형태이다. 이 동자포 옛 강은 현 만경교 남쪽 끝부분 옆에서 1km 쯤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1km의 거리를 북쪽으로 흐른 후, 현 동계배수문 옆으로 흘러나갔다.
익산시의 옛 강 모두 옛 모습 그대로 물로 채워져 있는데 이 동자포 옛 강은 현재 논으로 사용되고 있다. 논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들의 억압과 핍박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일제는 만경강 직강화 공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신설할 만경강의 넓은 부지를 사들이게 되는데, 그 대금은 만경강을 끼고 있는 인접한 면민들에게 부담시키고 총독부의 부담은 없었다.
일본인 관료들은 폐천 부지를 무상 양여할 것이라는 감언이설로 당시 시가의 60%인 헐값에 사들인다. 이로 인해 만경강 주변에서 논농사를 짓던 토지주들은 단숨에 헐값으로 토지를 빼앗긴 꼴이 되었다.
그 빼앗긴 토지를 대신할 토지는 이 동자포 옛 강을 메꾸어 논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하였다.
논을 조성할 계획으로 농민들은 1927년 ‘국유 하천 점용의 건’으로 총독부에 신청한 결과 “만경강 개수공사 준공 이후로 미룬다”는 통지를 받은 후 무려 9년이 흐른 1936년에야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얻어 1940년 논으로 만드는 공사를 마무리한다.
그때 투자된 공사비는 3천7백 엔이고 논의 면적은 12ha(3만 6,393평)이다. 당시 인부 삯은 하루에 40전이었다. 이 항아리 형태의 동자포 옛 강의 토지 소재는 만경강의 남측이지만, 익산군 오산면 목천리로 이어오던 중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비로소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로 편입되었다./이종진(만경강N 회장, 내 고향 물 해설가)
-동자포 옛 강 개답 경위
· 위치 : 익산군 오산면 목천리, 김제군 백구면 유강리, 공덕면 동계리 지내
· 면적 : 13.3정보(약 40,000평)
· 옛강 길이 : 2km 이상
· 총사업비 : 금 3,700엔 (당시 인부임금 40전)
· 공유수면 매립토지 소유권 취득인정 (소화 15년(1940년) 11월 9일)
· 인정기관 : 이리세무서(답-33,878평), 김제세무서(답-2,515평)
-1차 점용 요청
· 제 목 : 국유하천부지 점용의 건 제출 [소화 2년(1927) 3월31일]
· 제출자 : 김장호, 김병천, 김윤식, 김문식, 김갑식, 김연식 (총 6인)
· 주요 내용 : 경지 60,387평 소유 토지 대부분이 신만경강 하천부지로 편입되었다는 이유
· 답신: 전토 제373호.[소화2년(1927년) 4월7일]-“만경강개수공사 준공 후로 미룸”
-재차 점용 요청
· 진정서 제출 : 소화 10년(1935년) 9월 29일
· 주장 내용 : 6만여 평의 전 소유지 7할의 토지가 하천부지로 편입
· 매수가격이 당시 시가의 4할 이상 저렴(8,500원 이상)
당시 松井토목과장(현 경기도 토목과장) 폐천부지 무상 양여 고려 언명言明
· 허가일자: 소화 11년(1936년) 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