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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고대부터 근대까지 기억을 간직하는 유일한 도시
  • 편집국 기자
  • 등록 2022-12-22 12:25:09
  • 수정 2022-12-22 12: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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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그날도 여름이었다. 졸업을 앞둔 삼총사는 고장이 나도 이상치 않은 고물 자전거를 타고 미륵사지로 향했다. 우리 셋의 마지막이 될 것 같았던 그 여름. 그들이 도착한 곳은 폐사지가 아니라 졸업을 앞둔 불안한 청년들의 종착지였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을 했다. 공부에 진심이었던 첫째는 지금 대학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책임감이 유독 강했던 둘째는 몇 번의 이직을 경험하고 지금은 어느 중견기업의 생산 관리직에 종사하고 있다. 어딘가 늘 들떠 있던 나는 익산을 떠나 방송일을 시작했다. 여러 방송을 준비하고 촬영하며 익산 근처를 몇 번 지나친 적은 있었지만, 나는 사실 익산을 잘 몰랐다. 20대의 절반 이상을 익산에서 먹고 생활했지만, 한 번도 익산에 진심이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흔을 앞두고 15년 만에 다시 익산에 왔다.


익산에 다시 오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아니면, 방송일을 하며 소위 ‘짬’을 먹어서일까. 익산은 대한민국에서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기억을 간직하는 유일한 도시이다. 물론 서울이 있지 않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서울에는 흙이 없다. 틈을 허락하지 않고 건물이 들어서 있고, 길에는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대한민국에서 추억과 옛것을 허락하지 않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즉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상징이 바로 서울이다. 반면 익산은 아직도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익산은 멀리 고대로부터 근대까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옛 익산‘군’ 중심 고대의 기억과 ‘이리’시의 근대의 기억은 익산의 훌륭한 자산이다. 물론 혹자는 익산군과 이리시의 통합 이후, 아직도 화학적 결합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의 힘을 믿어야 한다.


사실, 문화는 모든 문제의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해답을 제공한다. 그게 문화의 힘이다. 그러므로 익산군과 이리시의 문화적 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왕은 물론이거니와 저 멀리 고조선 기준왕의 마지막 승부지가 바로 익산이었다. 익산시 금마면, 왕궁면 그리고 여산면은 물론이거니와 용안면의 어느 외딴 시골 마을에 가도 ‘원님이 울면서 들어와서 울면서 나간다’라는 그럴듯한 옛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는 곳이 바로 익산이 아닌가.


또한 근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이리시는 또 어떠한가. 이리 시내는 물론이거니와 춘포, 오산, 함열, 황등에서 들었던 일본인 이야기, 해방 이야기, 한국전쟁의 피란민 이야기 그리고 이리역폭발사고 이야기까지. 우리가 발 닿는 익산의 모든 곳이 이야기의 보고이고 창고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문화콘텐츠를 한곳에 묶어 전시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익산문화역사전시관’ 정도가 좋겠다. 익산시청도 고대 문화콘텐츠의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고민이 왜 없겠는가. 그렇다면 시내로 가져오면 된다. 익산의 고대를 느끼기 위해 굳이 익산의 외곽까지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근대와 고대가 한 공간에서 사이좋게 전시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청년이다.


익산은 청년의 비중이 무척 높다. 물론 이 주장은 인구학적, 통계학적으로 틀릴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원광대 재학생들이야말로 익산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이다. 2022년 현재 원광대 재학생은 15,000여 명이다. 익산이 이들을 모두 끌어안을 순 없다. 이들이 익산으로 주소를 옮기는 것을 기대하지 말자는 뜻이다. 대신 익산시는 이들의 미래성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쉽게 익산으로 주소를 옮긴다는 것은 반대로 쉽게 익산을 떠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원광대 학생들에게 익산의 문화와 역사 인물을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지금 원광대에서 익산학 강좌가 개설되어 많은 학생이 익산학을 학습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학점 취득을 위한 익산학 강좌는 벼락치기식의 암기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벼락치기식의 암기는 며칠이 지나면 다 잊고 만다. 차라리 미륵사지를 걷게 하자. 그렇게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을 걷고, 가람문학관을 구경하고 나면, 주말에 친구들과 모여 치킨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는 지역화폐나 쿠폰을 제공하자. 학생들은 신이 나서 가까운 익산근대역사관부터 찾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나이를 먹고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여름휴가를 익산에서 보낼 것이다. 대가 없는 지원, 그것이 청년과 문화 그리고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마흔이 되어 다시 찾은 익산은 말 그대로 보석이었다. 어느 마을에 가도, 어느 유적지를 가도, 어느 식당에 가도 이야기는 넘쳐났다. 물론 익산이 낭만적 가치로 가득 찬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비어있다는 것은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익산은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기억을 간직한 유일한 도시이다. 이제 현대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익산이 문화와 청년으로 미래를 가득 채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글쓴이 김정현 -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을 시작으로 방송일을 시작했다. 이후 SBS 「K팝 스타」, 「정글의 법칙」 등을 거친 뒤 TV조선 「미스트롯」 등을 연출했다. 최근에는 「고두심이 좋아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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