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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이 한 장의 사진6
  • 익산투데이
  • 등록 2019-09-11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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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역 앞 기차통학생들의 아침 풍경

 

 ▲ 1975년, 이리역 앞 아침 풍경이다.    ⓒ익산투데이
▲ 1975년, 이리역 앞 아침 풍경이다.    ⓒ익산투데이

 

옛날 던킨도너츠 쪽에서 찍은 사진인데, 시계는 오전 7시 반을 가리킨다.


역 앞 길다방과 역마차다방도 보인다. 청년의 바지는 나팔바지고 뒤따르는 여학생은 허리에 두른 띠 모양으로 보아 ‘원여상’ 학생으로 보인다.


멀리 구호탑 곁, 쑥색 치마를 입은 이리여고 학생들도 무더기로 보인다.


열십자 레일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철도와 기차역의 도시 이리(익산)는 이리만은 아니었다.


호남선 아래쪽에서 오는 정읍 김제 통학생들은 이 상행열차를 정읍선이라 했고 논산 강경 함열에서 다니는 학생들은 대전선이라 했다.


군산선과 전라선도 있었다. 60년대 ‘새복밥’ 먹고 남성고를 다닌 소설가 박범신은 강경 이리 통학생이었다.


여기 이야기가 있다. 지정 좌석이 없던 때의 이야기다.


정읍선이 보통 다섯 량 정도의 열차로 이리역을 향해 출발한다. 첫 칸은 원대생들과 여고생들이 함께 타고 그 뒷칸부터 공고, 남고, 농고, 상고, 원고, 이고생들이 탔다.


대개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탄다. 그런데 열차 사정으로 하루는 한 량이 줄게 된다. 이렇게 되면 쪽수가 부족하거나 착한 학생이 많은 학교 통학생들은 찢어져야 했다. 굴욕이었다. 그 남학교가 어디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역 간판보다 더 크게 ‘물자절약’과 ‘총화단결’이 붙어 있다. 구호의 시대였다.

신귀백(익산민예총 대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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