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내 머릿속의 지우개, 치매
  • 익산투데이
  • 등록 2014-01-29 13:23:00
  • 수정 2014-03-28 14:25:57

기사수정

 


▲  이재성 원장  ⓒ익산투데이


65세 ‘깜빡 님’의 40년 주부 생활 동안, 기억 못 해서 고생한 적은 없었다. 시댁 제삿날은 당연하고 시누 남편 생일까지 음력 양력 구분해서 다 챙겼다. 다소곳한 성격의 현모양처 깜빡 님의 기억력이 문제 된 것은 큰딸과의 약속을 잊어버린 때문이었다. 옆 아파트에 사는 큰딸이 출근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오후 3시쯤 아이를 받는 게 일상이었다. 어느 날 오후 3시 그 약속을 잊어버렸다. 큰딸에게서 전화를 받은 건 집안에서 빨래 개던 중이었다. 가슴이 덜컹하면서 뛰어 나가 아이를 받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까마득히 잊을 수 있는 지 이해가 안 갔다.


몇 개월간 비슷한 실수들이 이어졌다. 거스름돈 안 받는 일이 다반사였고, 집 전화번호도 까먹을 때가 있었다. 딸을 따라 신경과에 가 받은 진단은 ‘경도 인지 장애’였다. ‘경도’는 가볍다는 말. ‘인지’는 기억 능력, ‘인지 장애’는 기억력 저하였다. 그러니까 기억력이 살짝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깜빡 님이 비슷한 증상 가진 친구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6년 안에 치매 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얼굴이 굳었다.


경도 인지 장애라는 병명을 붙인 양의학에서는, 치매로 발전하지 않는 보통 수준의 기억력 감퇴를 건망증이라 한다. 가스 불 안 끄는 정도를 말한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경도 인지 장애가 ‘건망증(健忘症)’이다. 헛갈릴 거 없다. 양의학의 경도 인지 장애와 한의학의 건망증은 같은 것이고, 치매로 진행되기 전 단계이며, 꼭 치료받아야 한다고 기억하면 된다.


정말로 10년 정도 지났을 때 ‘깜빡 님’에게 치매가 왔다. 생활 모습이 전혀 달라졌다.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요리는 어지간하면 비슷하게 만들어 내던 음식 솜씨가 없어졌다. 못할 것 같았다. 일상생활도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아침 식후 설거지를 그대로 두고 청소를 했다. 결국, 설거지하고 나서 또 주방 청소를 했다. 아들딸 손주 이름을 까먹었다. 기껏 가족관계 기록부 떼는 일인데도 동사무소 가야 할 일 있으면 꼭 딸에게 부탁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다. 흔히 말하는 노화에 의한 치매를 말한다. 깜빡 님의 치매는 한의학에서 뇌뿐 아니라 심장과 비장 기능 저하가 동반된 예라 한다. 한의학에서는 심장이 피를 통해 뇌에 정신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비장은 소화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한다. 정신 에너지와 영양분 공급이 부족해서 뇌의 노화가 빠르게 진행된 거다. ‘심비양허(心脾兩虛) 치매’라 한다.


같은 알츠하이머형 치매, 즉 노화에 의한 치매인데도 기운이 넘쳐서 가족을 힘들게 하는 예도 있다. ‘버럭 할아버님’이다. 버럭 님 70세쯤, 기억력이 심하게 떨어졌다. 원래부터 고집이 세었지만, 훨씬 더 세어졌다. 1년쯤 지나 며느리가 재산을 훔쳐 갔다고 생트집을 잡았다. 몇 년 전 택지 개발로 밭을 정리할 때 며느리가 재산을 다 가져갔다고 우기는 데 정말 구체적인 생트집이었다. 밤중에 자다 일어나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면서 이유 없이 소리를 질렀다. 식사량이 늘어 늘 먹을 것을 찾았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버럭 할아버님. 밖에 나가면 길을 잃고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급기야 대소변을 못 가리기 시작했다.


‘버럭 할아버님’의 치매는 한의학에서 심장과 간의 화 때문이라 한다. 심장의 화는 잠을 못 자게하고 가슴을 불처럼 달아오르게 한다. 간의 화는 성격을 조급하게 하고 쉽게 화내게 한다. 심장과 간의 화는 결국 정신 에너지를 과하게 소모하여 뇌를 빨리 늙게 한다. ‘심간화왕(心肝火旺) 치매’라 한다. 심장과 간의 화가 너무 왕성한 사람의 치매라 이해해도 된다.


대소변 못 가리고 사람 못 알아보는 치매 말기 증상은 버럭 할아버님만 그런 거 아니다. 깜빡 님도 말기 되면 뇌 기능이 극도로 떨어져 일상생활 능력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치매이면 이미 뇌 기능이 많이 퇴화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치매는 한 번 들어서면 막지 못하고 진행되어 끝내 죽음까지 가지고 간다.


치매 예방의 핵심은 10원짜리 고스톱이 아니다. 외롭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기 우울증이 치매 발생에 아주 해롭다. 예방에 도움 되는 음식이 있다. 심비양허 치매 예방에는 잣과 영지버섯이 좋고, 심간화왕 치매 예방에는 전복과 결명자가 좋다.

 
 /글  이재성(모현동 이재성 한의원 원장)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