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택시기사 화물차운전 도현신 예비후보
  • 고훈
  • 등록 2014-05-06 18:10:00
  • 수정 2014-05-13 15:26:27

기사수정
  • <지방선거, 이 사람!> 국회의원 비서관 내던지고 시의원 도전

 

 ▲    ⓒ익산투데이
▲도현신

 전정희 국회의원 당선에 한 몫을 톡톡히 한 도현신(49) 시의원 예비후보. 그가 국회의원 비서관직을 사퇴하고 사선거구(동산동, 영등1동) 시의원 선거에 나섰다. 그가 돌연 비서관직을 사퇴하고 지역정치에 나선 배경이 궁금하다.


“사람들이 ‘국회의원 비서관이면 대우도 시의원보다 더 좋은데 왜 시의원에 나가냐’고 묻곤 해요. 그 이유는 ‘기초의회부터 변화시키지 않으면 정치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오랜 신념 때문입니다. 노사모 활동시절, 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지켜보면서 아무리 위에서 개혁을 하려고 해도 풀뿌리 기초의회부터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죠”


그는 올곧고 부지런하기로 유명해 지역민 사이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 “3월 3일에 예비후보로 등록해서 다른 후보들보다 20일 가량 먼저 출근인사를 시작했어요. 3월초는 꽃샘추위에 한창 추울 때죠. 주민 분들 사이에서 열심히 한다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다른 후보들이 인사를 해도 다 전줄 아세요”라며 웃는다.


도 예비후보는 선거 때만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주민들의 인정과 지지를 얻고 있다. 시민에 대한 열린 자세를 바탕으로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지역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그렇다. “서동축제 먹거리장터가 열리면 보통 정치인들은 악수만 하고 술이나 먹고 가지만, 저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해 먹거리 장터에서 일하고 있어요. 동산동 주메뉴가 산오징어인데 200마리 가량을 제가 직접 손질하거든요. 독거노인 김장나눔 봉사활동도 그렇고요”


그가 지나온 인생역정은 한 편의 드라마보다 우여곡절이 심했다. 처음엔 노동자문화공간인 햇살문화를 운영하려고 닭볶음탕 식당을 운영한다. 이후 유통업에 종사하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업도 벌였다. IMF로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해체된 뒤엔 택시기사 3년, 화물차 기사 10년을 보냈다. 그 뒤로는 과일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생활인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문학을 잊지도 져버리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써온 시 100여편을 모아 최근 시집 ‘들안개’를 펴냈다. 그의 시 ‘혜화 학교 가는 길’은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있었던 일을 시로 옮겨낸 것이다. 엄마와 지체장애인인 아이가 함께 창혜원(구. 혜화학교) 가려고 택시를 타고 갔다가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같이 울어준 사연을 투명한 시어로 담아냈다. 그는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안도현 등 걸출한 문인들을 길러낸 호운 박항식 선생(1917∼1989)에게 사사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졌지만 익산 최초 고교연합문학동아리인 청학문학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치는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시민들의 삶이 투영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개혁적 생각도 시민들의 삶을 담아내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것도 아닌 거죠”라고 우문에 현답으로 응수한다.


그는 어린이와 환경분야에 관심이 많다. 그가 우선적으로 내세운 공약은 지자체에서 노후된 공동주택 어린이 놀이터를 지원할 수 있는 조례 제정과 숲 공원화 사업, 소라산 자연마당 등이다. 영등동 약촌오거리에 비즈니스센터 건립도 공약하고 있다.


“비서관 생활을 하면서 국회의 예산운용과 시스템을 배웠습니다. 필요한 인맥들도 형성했어요. 보통 시의원들이 집행부의 예산을 삭감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제가 시의원이 된다면, 여러 아이템을 제시해서 오히려 예산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겠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가르침인 ‘내가 손해 보면 적이 없다’를 10여년 정치판에 몸담으며 우직하게 부화뇌동하지 않고 신념으로 지켜낸 도 예비후보. 그는 존경하는 인물로는 전북 노동운동의 이론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조문익 열사(1964~2006)를 꼽았다.


“정치인은 선거철만 얼굴을 들이미는 사람이 아닌 시민들과 같이 활동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민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민들의 생각과 아픔을 알지 못해요” 그는 동산동 동신아파트에서 24년 넘게 아내와 아들 둘과 함께 살아오고 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최신뉴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