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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한의학
  • 익산투데이
  • 등록 2014-05-12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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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5월, 익산의 모 중학교에서 제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수학여행 도중 교통사고가 났다. 관광버스와 대형 덤프트럭의 사거리 충돌이었다.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의 안전벨트를 다 챙기고 앞자리에 앉으려던 찰나였다.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선생님이 차 앞유리에 부딪히는 장면을 본 ‘찬찬’ 양은 중2 여학생. 성장이 빨랐다. 중1 때 사춘기를 겪었다. 공부를 놓았다. 해야 하는 이유도 없이 공부만 하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생각 없이 끌려다니는 학원 공부가 너무 싫었다. 그러다 2학년 들어 많이 바뀌었다. 엄마의 차분함 덕분이었다. 그리고 정 많은 담임선생님이 큰 도움이었다.


그 사고 이후 ‘찬찬’ 양에게 이상한 증상들이 생겼다. 친구들이 소리만 크게 질러도 놀랬다. 이유없이 긴장했고 불안했다. 잠이 잘 안 왔다. 짜증도 자주 났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학교에서 치료 기관 안내를 해주었다. 엄마를 따라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원에 온 ‘찬찬’ 양은 얘기하기를 싫어했다. 사고 순간을 설명하는 게 너무 싫었다. 선생님이 말하지 않아도 전부 안전벨트를 맸으면 선생님이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했다. 큰 소리는 아니어도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종알종알 얘기하는 게 취미고 특기였는데 거의 말을 안 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다들 그랬다. 멍한 순간들이 따라다녔다.


치료받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가미온담탕이라는 한약을 복용했다. 이틀에 한 번씩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치료받으면서 금세 좋아진 건 불안과 불면이었다. 불안했던 가슴이 풀어졌고 잠을 푹 자는 날이 생겼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는데 사고 순간이 스스로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꿈에서 괴물을 보기도 했다. 그런 꿈 꾼 다음 날 아침은 약간 멍했다. 우리 집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3개월쯤 지나서 거의 다 나아졌다. 진단은 그때 내려졌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은 정신의 외상을 말한다. 몸 안 다치고 크게 놀란 일만으로도 정신은 외상을 입는다. 한의학은 각각 병명을 붙인다.

 
정신이 너무 각성되어 잘 놀라고 불안하고, 잠이 잘 안 오면서 짜증 잘 내는 증상을 ‘경계(驚悸)’라 한다. 사고 장면을 피하려 하고, 죄책감이 들거나, 우울해하고 걱정에 사로잡혀 사고 순간이 잘 기억나지도 않는 ‘회피 증상’은 심장이 약해져 그런다고 한다. 사고 장면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열이 나고, 무서운 생각이 들고, 나쁜 꿈을 꾸며 사고를 재경험하는 건 ‘정충(??)’이라 한다. 합하여 경계, 정충이다. 이런 증상들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 진단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 달 안에 없어진다.


‘찬찬’ 양이 3개월이나 고생한 건 사춘기와 담임선생님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그래도 회복이 쉬웠던 건 어머니 덕분이었다. 변한 성격, 못 드는 잠, 가슴 두근거림을 다 들어 주었고 늘 같이 있었다.


‘전우’ 할아버님은 6·25 전쟁 참전 중 동료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으셨다. 99년에도 한의원 치료 받았으니 50년을 고생하셨다. 증상은 무서운 꿈, 불면, 급작스런 가슴 두근거림.. 할아버님은 참전 후 대한민국을 지켰다는 자랑스러움이 없었다. 아버지가 좌익이라 북으로 넘어가셨기 때문이었다. 늘 숨겼고 혼자 힘들어했다. 한의사가 할아버님 덕분에 한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되지 않았느냐며 늘 위로를 했다. 하지만 할아버님에게 한국 전쟁은 동료 잃고 아버지 잃은 충격보다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참전 용사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악화 요인 중 최악은 ‘지지자 없음’이다.


치료는 한약, 침, 그리고 상담이다. 특히 침은 양의학 치료와 효과가 같다는 분석이 작년에 나왔다.

 
치료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주변의 지지다. 어쩔 수 없는 사고와 전쟁에서도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면 죄책감 느끼고 불안에 떠는 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다. 하물며 구조할 수 있었던 아이를 잃은 부모 마음은 어쩌겠는가. 세월호 안에서 창문 두드리는 모습을 어떻게 잊고 살아가겠는가. 그래서 온 국민이 노란 리본 다는 정성은 오랫동안 절실하다.
 

/글 이재성(모현동 이재성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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