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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집 사장에서 재선의원으로
  • 고훈
  • 등록 2014-06-24 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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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식, 공천파행 이겨내고 무소속으로 당선

 

 ▲    ⓒ익산투데이
▲김연식

 익산은 무소속 시의원 출마가 도내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모두 23명의 무소속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으나 대부분 낙마했다. 고작 4명만이 살아남아 시의원에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지만 무소속 돌풍을 무색하게 했다. 거기다 도의원으로 출마했다가 시의원으로 노선을 변경해 당선된 예는 더욱더 찾아보기 힘들다. 예비후보 이전부터 몇 달 앞서 선거운동을 통해 기반을 다져온 다른 후보들을 앞지르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


그러나 이번 선거의 진기록 중 하나로 남을 당선자가 있었으니 바로 김연식 시의원 당선자(재선)다. “부족함이 많은 사람을 뽑아주신 유권자분들에게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책임감과 중압감을 느낍니다. 저는 새정치민주연합 도의원 예비경선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습니다. 시민의 적극 지지를 받은 1위 후보인 저를 면접을 통해서 배제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차분하게 지난 도의원 경선과정을 되짚어가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김 당선자. 그는 당시 정치를 포기할까도 고심했다. 그러나 4년간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물러설 순 없었다. 도의원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그는 자신은 물론 지지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무소속으로 시의원 재선에 나서야겠다고 여겼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등록 마감일에서야 시의원 후보로 등록했어요. 선거운동 14일이라는 기간이 매우 짧았지만,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여러 지지자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의 정치적 바탕이 되는 주민들의 지지는 하루 이틀 쌓인 것이 아니다. 김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서민의 대변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낭산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16살부터 객지생활로 산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일찍 사회에 적응했다. 20대에 건설 분야에서 자영업을 했지만 68년에 불황이 오면서 사업이 어려워져 귀향했다.


이후 영농후계자(농업경영인)로 농산물을 가공해서 좋은 먹거리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대두를 가공해서 2006년 ‘미륵산 순두부’ 가게를 열게 됐다. 사업은 다행히 번창했고 틈틈이 로타리클럽에서 봉사활동도 하며 지역민들의 신뢰와 인정을 받았다. 그는 자수성가한 사람은 주장이 세고 고집스럽다는 대중의 편견을 깨트리는 인물이다. “정치를 하기 전에도 그랬지만 자신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분들 보면 항상 제일처럼 생각합니다. 저도 어려웠던 시절이 많았습니다. 힘든 분들 돕는 일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이어서 김 당선자는 “도의원 후보에서 시의원 후보로 나서면서 저 때문에 떨어진 다른 시의원 후보에게도 미안한 마음입니다”라며 “현재 익산시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난관에 처해있습니다. 당선자와 의회에서도 이 어려운 난관을 잘 해쳐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내세운 대표적 공약은 ①로컬푸드 확대 ②고도육성사업 관광인프라 구축이다. 김 당선자는 “익산은 도농복합도시로 농가 규모로 보면, 대(중)농가가 2~30%, 자립이 어려운 소농가가 6~70%”라며 “소농가의 로컬푸드직거래 참여를 더 확대할 것”을 지적했다. 또한 김 당선자는 “익산은 살아있는 백제문화가 잘 보존된 곳으로 미륵사지석탑과 왕궁 유적이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관광인프라 구축에 투자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합리성을 갖고 익산시 전체의 발전과 이익을 위한 의정활동을 하는데 앞장 서겠다”는 김 당선자는 “대화와 화합을 통해서 시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하고 싶다”며 의정활동의 포부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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