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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백제역사유적지구, 인류문화사적 의미와 가치
  • 익산투데이
  • 등록 2015-07-01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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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1400여년 전의 백제문화, 부흥의 꿈 이뤄지나

후기백제 중심, 궁성과 국가 사찰 등 고대수도 요건 체계적으로 갖춰 

미륵사지는 미륵신앙을 기초로 한 3탑 3금당의 독특한 가람구조 

왕궁리 유적은 전조후정(前朝後庭)식 정원경관과 조경기술의 탁월한 사례 




 

전북도민과 익산시민의 염원이 담긴 익산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가 오는 4일 독일 본에서 개최되는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이는 지난 5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기술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평가결과 보고서의 권고안(등재가능, 보류, 반려, 등재불가)을 등재로 권고하여, 이변이 없는 한 등재가 확실시된다.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이는 한국의 12번째 세계유산이며 전라북도에서는 고창 고인돌유적(2000)에 이은 2번째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판소리(2003), 매사냥(2010), 농악(2014) 3개의 인류무형유산을 포함하여 총 5개의 유네스코 등재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완전성, 진정성,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 Outstanding Universal Value), 적절한 보존관리 계획 수립 및 시행 여부가 입증되어야 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10가지 평가기준을 갖고 있으며 문화유산은 이중 어느 한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보고서에서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오랜 시간 동안 또는 세계의 어떤 문화지역 안에서 일어난 건축,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 또는 조경설계의 발전에 관한 인간적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등재기준 (ⅱ)와, ‘문화적 전통, 또는 살아있거나 소멸된 문명에 관하여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등재기준 (iii)을 충족했다고 평가했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을 간직한 ‘익산역사유적지구’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후기 백제(7세기 초반 제30대 무왕대의 왕도)의 중심이 되어 궁성과 국가 사찰, 왕릉, 산성 등 고대 수도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륵사지는 우리나라 불교건축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유적으로 미륵신앙을 기초로 한 3탑 3금당의 독특한 가람구조를 지니고 있는데(중국과 일본에서는 전례가 없음)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의 축조방식을 그대로 따라 만든 석탑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뛰어난 공예기술과 백제인들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수평으로 흐르다가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휘어진 우아한 곡선은 이러한 백제의 멋스러움을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미륵사는 백제시대 사찰 건립과 목탑석탑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독보적이고 특출한 증거이자, 고대 가람의 실체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미륵사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고자 지은 호국 사찰로서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백제인들의 간절함이 담겨있다. 





또한 지난 2009년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과정 중 발견된 사리장엄에서 금동제 사리 외호, 금제 사리 내호, 금제 사리 봉영기 등 총 9,90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한꺼번에 출토되어 국내외에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중 금으로 만들어진 사리봉안기(가로 15.5cm, 세로 10.5cm)에는 백제의 왕비가 재물을 바쳐 이곳에 미륵사를 세우고 사리를 봉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미륵사지의 창건내력을 알 수 있다. 


한편, 현재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특별전이 7월 26일까지 열리고 있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왕궁리 유적은 우리나라 식 정원 경관과 조경기술의 탁월한 사례로, 불교와 유교 그리고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풍경식 정원이 발달했으며 중국식과 일본식 정원이 혼성돼 하나의 독특한 양식을 갖추고 있다. 사비시대의 왕궁 정원의 발견은 중국-백제-일본으로 이어지는 정원문화의 교류양상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백제문화의 국제성을 엿볼 수 있다. 


음양오행설에 입각한 풍수설 영향으로 양기, 즉 택지를 택하는 풍습이 성행하여 지형의 제약을 받아 후원 뒤뜰에 힘을 기울이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계단식으로 된 후원인 ‘화계(花階)’가 바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구조의 정원이다. 왕궁리유적은 6~7세기 대표적인 정원 유적이자 동아시아 왕성시스템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자료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이곳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왕궁리 5층 석탑(국보 제289호)은 1단의 기단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인데,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해체시 제1층 지붕돌의 중앙에서 발견된 사리장치는 사리기 1식과 금강경판 19매(각 길이 14.8cm, 너비 13.7cm)이며, 심초석에서는 청동여래입상, 청동방울 등이 발견되었다.  


익산역사유적지는 7세기 전반경의 백제 고대 도성유적으로서, 19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된 발굴조사와 학술연구를 통해서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삼국유사」, 「와유록」 등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 그 진정성이 입증되었다.


이밖에도 이코모스는 완전성 측면에서 세계유산적 가치를 반영하는 유산이 잘 남아있고, 백제역사유적지구통합관리사업단이라는 단일 민간 전담기구를 통해 보존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여 등재권고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로써 전북도민과 익산시민은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역사적, 문화적 특징을 바탕으로 백제고도로서 영광은 물론 소중한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1400여년 전 백제문화의 부흥의 꿈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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