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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한 바퀴, 구석구석 톺아보기
  • 고훈
  • 등록 2015-07-24 14:47:00
  • 수정 2015-07-24 14: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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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참여연대 구도심 지역 현장탐방 동행 취재기



중앙동 일본근대가옥/옛 추억 가득한 중앙시장/화려했던 영정통 젊음의 거리

창인동 이리역폭발사고 통증이 지금껏 남아있는 골목골목 주택가를 돌아보다





지난 17일 익산참여연대는 정보공개 시민모임에 참여하는 시민 11명을 대상으로 구도심 지역 현장탐방을 실시했다. 이번 탐방은 지난달 ‘도심공동화 극복 가능한가’라는 강연에 이어 직접 두 발로 걸으며 현장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본 기자도 모임의 일원으로서 이들과 함께 동행 했다.


탐방은 이날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돼 오후 2시까지 진행됐다. 중앙상가번영회 장경호 회장의 스토리텔링으로 중앙동, 창인동 곳곳에 얽힌 사연과 역사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우리동네 한바퀴 돌듯 골목골목을 거닐며 저마다의 추억들을 공유했다.

시민들은 중앙동 주민센터를 기점으로 인근 일본근대가옥, 영빈관예식장, 송원백화점, 중앙시장 본건물 2층, 매일시장, 롯네시네마 공사터, 옛 삼남극장, 옛 이리극장, 문화예술의 거리(옛 영정통), 익산문화재단, 수리수리 전시회, 중앙동 철길 인근 골목, 익산역 승무원 숙사, 엘베강, 익산역 등을 코스로 순회하며 꼼꼼히 둘러봤다.







첫 코스로는 중앙동 주민센터 부근 일본적성가옥들을 탐방했다. 장 회장은 일본식 근대가옥의 특징을 설명하며 “이들 건물을 철거할 것인지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보호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사례로 “군산은 아픈 역사지만 근대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근대유산으로 지정했고 현재 전국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페업한 영빈관 예식장의 공간 활용방안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현재 일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비어있는 건물이 아깝다는 지적이다. 예식장이 들어서기 이전엔 익산군청이 있던 건물이었다.





이어서 익산 유일의 백화점이었던 송원백화점 건물 사이를 거닐었다. 지금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있지만 한때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곳이다. 중앙시장 입구에서 보이는 원여상 학교건물에 대한 추억도 흘러나왔다. 한 시민은 “어머니가 원여중을 여기서 다니셨다고 말씀하시곤 했다”며 옛 기억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중앙시장에 들어서면서 일행들은 본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평소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아케이드를 따라 걷기만 하지 2층까지는 올라가보질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시장을 좀 다녔던 이들이라면 그리운 냄새를 간직한 곳이리라. 2층에는 방앗간과 약재상, 통닭집, 떡집 등이 자리를 잡고 지금까지 장사를 이어오고 있었다.


장 회장은 “현재 비어있는 곳도 많고 상인들이 노령화 되어 있는데, 전주 남부시장을 벤치마킹해 청년들을 유입시키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중앙매일시장이 밤 8시~9시가 되면 철시를 하면서 텅텅 비는데 이에 대한 공간 활용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어서 교복거리를 뒤로 하고 중앙동 중심을 향해 걸었다. 가장 번화했던 이 거리를 걸으며 시민들은 또 한 번 저마다의 기억들을 한 움큼 쏟아냈다. 한 시민은 “여기 근처에서 대학생으로 첫 미팅을 했었다. 예전엔 이곳을 걸을 때면 사람 머리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 정도로 사람이 북적였는데 이제는 텅텅 비었다.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곧게 난 길을 쭉 따라 걸었더니 이윽고 엘베강이 오른쪽 시야에 들어왔다. 더운 날씨에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 이야기도 술술 나온다. 장 회장은 “엘베강은 다들 아시죠?”라고 운을 떼며 김칠선 할머니에 대한 썰을 풀어놓았다.


엘베강은 34년 전인 1982년 김 할머니가 이리역 앞에서 잃어버린 막내딸을 찾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시작한 가게다. 이후 김 할머니는 5년 전에야 충북 보은에 거주 중인 막내딸을 찾았다. 딸은 정읍역에서 내렸다가 이후 고아원에서 자란 뒤 결혼했다고 한다.





엘베강을 뒤로 하고 문화예술의 거리를 향해 나아갔다. 이곳은 예전엔 영정통이라 불리던 곳이다. 영정통은 한때 젊음의 거리로 통했다. 70~80년대 ‘작은 명동’이라 불리던 상업과 금융, 문화의 중심지였다.


옛 삼남극장이 있던 장소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와 가수 하춘화 씨 사연으로 유명하다. 당시 22살 꽃다운 나이로 인기절정 가수였던 하 씨가 이리역 앞 삼남극장에서 관객 500여명을 두고 공연하다 폭발로 부상을 당하자 함께 공연하던 이 씨가 하 씨를 업고 병원으로 옮겨 치료토록 한 일화는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익산문화재단으로 가는 길목에도 일본식 가옥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익산문화재단 건물도 일본인 농장지주들의 쌀 생산량을 늘리고자 창설한 익옥수리조합 사무소이다. 이 건물은 지금까지 토지개량과 수리사업을 명분으로 과도한 공사비와 수세를 부담시킨 일제 근대 농업수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건물에 쓰인 빨간 벽돌은 이리국민학교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과 같은 벽돌이다.






바로 옆 건물인 익산창작스튜디오에서는 ‘수리(水利) 수리(修理) 현대미술전’이 때마침 24일까지 열리고 있어 전시회를 관람했다. 이번 전시는 익산창작스튜디오의 첫 번째 기획전시로 최주연 예술지원팀장과 문재선 큐레이터의 흥미로운 설명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이리역폭발사고를 재현한 작품과 문화예술의 거리에서 직접 녹음한 소리와 소설가 이상의 작품을 가상으로 접목시킨 인터렉티브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다음으로는 창인동의 익산역 부근 주택가 골목골목을 누볐다. 철길 인근에 형성된 주택가는 평일 낮인데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왠지 쓸쓸해보였다. 장경호 회장이 주민들과 먼저 인사하며 탐방을 소개하자 현지 주민들이 직접 지역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창인동 한백민미용실 원장은 “내가 처음 익산으로 시집 올 때만 하더라도 이 부근에 연탄공장과 목재소 공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길에서 만난 또 다른 창인동 주민은 “이리역 폭발사고 이후 당시 진동 때문에 문이 틀어져 지금도 문이 안 맞는 집도 많다”며 아픔의 역사를 그대로 증언했다. 창인동에도 일본식 가옥들이 곳곳에 그대로 방치돼있다. 폭이 좁아 두 사람이 걷기에도 힘든 골목길이 과거 신작로를 큰 줄기로 하여 여기저기 거미줄처럼 퍼져있었다. 





익산역을 끝으로 이날 탐방은 마무리됐다. 설명을 진행한 장경호 회장은 “구도심 골목들이 익산의 자산으로 보존되고 관광상품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탐방에 참여한 시민들도 “익산에서 나고 자라 몇 십 년을 살아왔지만 처음 가보는 곳도 많았다”며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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