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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 희망 없으면 지역사회도 희망 없다”
  • 고훈
  • 등록 2015-08-12 10:45:00
  • 수정 2015-08-12 10: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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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일등공신 최완규 (재)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최완규 (재)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지역축제는 후대 물려줄 공동체 정신, 본질에 충실해야”

“단체장 바뀔 때마다 지역의 상징어 변경은 심각한 문제”


지난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익산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을 포함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러한 쾌거에 일등공신이 있었으니 바로 (재)전북문화재연구원 최완규 이사장이다. 







그는 익산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장으로서 익산 유적의 단일등재를 위해 힘써왔고 공주, 부여와 통합추진 이후엔 등재추진위 이사로 활동했다. 또 원광대 마한·백제연구소장, 이코모스 집행위원으로 활약하면서 최 이사장은 익산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최 이사장은 지난 7월 독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조차 참석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함께 축배도 들지 못한 채 어느새 세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있었다. 


어느 속담대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고 했던가.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속상할 만도 하다. 그런데 정작 최 이사장은 담담하다. “전혀 관심 없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조용히 앉아 좋은 글을 쓰는 일이 내 할 일이다” 최 이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문을 열었다. 


지난 2006년 최완규 당시 원광대 마한·백제연구소장은 보통 사람이 감히 꿈꾸지 못할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바로 익산 백제유적지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재였다. “처음엔 다들 믿지 않았다. 원광대 총장으로 1973년 마한·백제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익산문화권의 토대를 마련하셨던 김삼룡 선생님이 말씀하셔도 전혀 믿지 않았다. 나는 종종 외국에 나가면서 세계적 추세도 파악하고 있었고 이코모스 집행위원을 하면서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당시엔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국보나 보물, 하다못해 지역문화재 지정도 까다롭고 어려운 판국에 익산 미륵사지 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 이사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긴 누가 믿었겠나? 2006년 11월쯤인가. 익산시 공무원들을 시청 앞 시민문화회관에 모아놓고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꿈이라고 강연한 적이 있다. 한 공무원이 끝나고 나를 찾아오더니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뜨겁다’고 하더라. 나도 덩달아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때 그 공무원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보고 싶다는 최 이사장. 이들의 재회가 이뤄진다면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오랜 세월 바래온 꿈을 이뤘으니 감개무량 할 법도 한데 최 이사장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진다. 


등재 추진을 먼저 주도적으로 시작한 익산이 최초 4곳 가운데 2곳 밖에 등재되지 못한 반면, 충남에서 공주 2곳, 부여 4곳 등 6곳이나 등재됐기 때문이다. 각종 예산이나 기구 편성에서 익산이 충남에 밀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2006년부터 원광대 마한·백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전부 등재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제대로 된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다. 


최 이사장은 그 일만 생각하면 슬프고 안타깝다며 몸서리를 쳤다. “이미 우리는 2006년부터 등재 준비를 시작했다. 심지어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아 당시 학술지에 논문으로 써놓았다. 부여, 공주에서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그 과정에서 익산에서 기존에 추진하던 걸 다 집어넣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그 모든 걸 한 사람이 무왕인데, 무왕릉을 뺀다는 게 말이 되나”


최 이사장은 전부 등재를 하지 못하게 된 배경으로 전라북도와 익산시 행정을 지탄했다. 지역공무원들이 충남도 공무원들보다 열정과 사명의식 면에서 결여됐고, 문화유적에 대한 이해 부족한데다, 건전한 비판을 비방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면서 그간 들인 노력에 비해 과실을 제대로 따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공주, 부여는 도시화과정에서 문화유적은 물론 자연환경마저도 심하게 파괴됐다. 반면 익산은 유적의 보존 상태나 자연환경이 공주나 부여에 비해 월등히 낫다. 왕도로서 왕궁, 성곽, 사찰 다 남아있으니까. 그런데 충남에서는 익산을 백제 수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싫었던 거다. 여기에 등재 막바지에 이른 2013년 말, 2014년도 이때부터 익산시에서 나를 소외시키고 공무원들이 멋대로 타지자체와 합의하면서 망가뜨려 놨다”


최 이사장은 쓴 소리를 거침없이 연이어 쏟아냈다. “세계유산 등재는 본질적인 목표가 아니었다. 성사 여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시민사회와 함께 거대 담론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성숙하면서 문화시민이 되고 우리 고장을 사랑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다. 그걸 하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 정치인들을 보면 남의 것 가져다가 자기 앞에다 놓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지역의 상징어를 바꾸는 문제도 지적했다.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상징어가 바뀌는 것도 큰 문제다. 예를 들어 이한수 시장 때는 ‘어메이징 익산’이라고 하고 박경철 시장 들어서는 ‘이천년 역사고도 녹색도시 익산’이라고 하고. 도대체 왜 이게 바뀌어야 되는 건지. 나라 정권교체도 아니고” 


아울러 지역축제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축제도 마찬가지다. 자라나는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가치관이 없다. 축제는 어른들이 미래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문화전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의 교육으로서 학습되고 전달되는 문제로 다뤄져야한다” 


일본에 가면 마츠리를 관심 있게 즐겨본다는 최 이사장. 지역축제는 결국 공동체정신을 담는 그릇이고 이를 통해 지역문화를 창달해 후대에 물려줘야 된다며 열변을 토해냈다. 


그는 “축제가 행위의 반복으로 연속성을 갖고 뿌리와 전통으로 이어지면 지역사회 구성원들 머릿속에 상징으로 남는다. 그래야 백년, 이백년 오래 간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축제가 단체장 마음에 따라 보여주기 식 일회성 쇼로 그치고 있다. 물론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쇼 안에 과연 무엇을 담아내느냐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본질에 충실한 축제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최 이사장. 그는 “물론 처음엔 건조할 수 있다. 담백한 맛을 담아낼 수 있을 때, 익산만이 가질 수 있는 축제가 된다”며 “문화적 전통 속에서 후대에 이어지는 축제는 본질에 충실하기 때문에 오래간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 이사장은 “결국 미래세대에 희망이 없으면 한 집단의 희망이 없는 것이다”며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되고 기성세대들이 고민해야 될 지점이다”고 강조했다. 





▲최완규 이사장은 익산에서 태어나 원광대 교수, 전북도 문화재위원, 한국고고학회 회장, 원광대 마한백제연구소 소장, 익산역사유적지구 세계문화유산등재추진위원회 위원장,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재)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금강유역 백제고분연구 등 약 100여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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