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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예술단 정각수 단장
  • 고 훈 기자
  • 등록 2016-07-20 12: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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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의,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에 의한 음악봉사 단체를 꿈꾸다




지적장애인 음악봉사를 주로 하는 자이언트 예술단을 이끄는 정각수 단장은 함열 다송리 출신으로 대한민국에서 사연많은 58년 개띠이다.


정 단장은 실용음악 연주가 좋아서 음악을 직업으로 삼았고, 생활인으로 살아가면서 음악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맛본 기쁨과 보람으로 잃어버린 인생의 활력과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IMF 당시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음악봉사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지만, 그 기쁨을 잊지 못해 예술단을 창단하고 올해로 8년째 활동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자이언트 열린음악회를 개최해오면서 예술활동에 소외되어 온 장애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자이언트 예술단 정각수 단장을 익산투데이가 만났다.






▲자이언트 예술단 명칭의 의미는
거인처럼 커다란 마음으로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진짜 열심히 하자는 의미에서 제가 명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 자신은 참 왜소하고 보잘 것 없잖아요.


이와 반대로 크게 생각해서 봉사를 해보자, 장애인을 위하는 마음처럼 크게 하자 해서 자이언트 예술단이 되었지요. 처음엔 잘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있었지만 해보니까 발전 가능성이 아주 많아요.



▲자이언트 예술단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대중적인 실용음악 연주가 좋아서 시작했던 음악이 업이 되었고, 생활인으로 살면서 소신껏해왔던 음악봉사활동과 연주지도활동을 이어가고자 지난 2009년에 제가 창단했습니다.
창단된 지는 올해로 햇수로는 8년째입니다.


창단 배경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충효회라는 지역봉사단체 소속으로 93년부터 창혜원(구 영산원)에서 음악봉사를 했었어요.


그때부터 장애인 음악봉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죠. 이후 2009년부터는 예술단 임원인 최상현이라는 절친한 친구가 국악학원도 운영하고 적십자 지구협의회장도 했는데, 이 친구하고 하고 같이 장애인 음악봉사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창혜원은 식당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로 좋아하지만 그 때 장애인 친구들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템포가 빠른 곡을 선곡해서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장애인 친구들이 리듬에 맞춰 춤을 정열적으로 추면서 놀라운 반응을 보여줬죠.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95년도까지는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98년 IMF 이후로 생업이 어려워지면서 봉사 활동을 잠시 중단했었습니다. 서울가서 2년 동안 막노가다하고 그랬어요. 그게 아쉽고 또 아쉬워서 예술단까지 만들게 됐죠.



▲자이언트 예술단 구성원들을 소개해주신다면요
회원들은 30명 정도고요. 먼저 고문으로 이순구님이 있습니다. 과거 교장 선생님 출신이시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정광수 씨는 고등학교 동창, 정병태 씨는 중학교 동창으로 역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고문들입니다.


임원인 최상현 씨는 국악학원 원장으로 아까 말한 절친이에요. 초창기부터 음악봉사활동을 같이 해온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아니었으면 음악봉사활동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실용음대 동기인 김형준·송완섭 씨는 현재 명지대 실용음악과 대학원에 재학 중입니다. 정우철, 황정우, 김순화(총무), 김용관 이분들도 역시 예술단의 운영에 큰 도움을 주고 계시고요.






▲음악봉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자이언트 예술단의 특징은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음악봉사를 많이 합니다.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한 달에 한 번씩 창혜원에서 미니콘서트 형식으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정기공연은 연 1회로 솜리문화예술회관에서 크게 하고 있어요. 아바림요양원에도 두 달에 한 번씩 어르신들 생일잔치 등 음악봉사를 하러 갑니다. 비정기공연은 저를 비롯해 악기 공연팀과 가수들, 그리고 국악팀이 나갑니다.


마침 박경숙 씨 등 민요팀과 가수들이 저번주 함열요양원에서 공연도 했죠.


국악은 민요, 사물놀이를 주로 하고요. 대중가요는 빠른템포의 경쾌한 곡들 위주로 선곡을 합니다. 늦기전에(정수빈), 남행열차 같은 곡들요.


특히 공연을 하다보면 장애인 친구들도 자기 흥에 겨워서 본인이 하고 싶은 노래를 하거나 그럽니다. 또 신입 교사들 노래를 하게 하면 백댄서하니라고 난리가 나요(웃음). 웃음으로 하나가 되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음악봉사를 한 일은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걸 안 했더라면 무엇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창혜원 박광명 원장님, 사랑원 안진석 사무국장님, (사)서동우리가락연구진흥원 이사장 최상현과 단원들, 자이언트 팝밴드 단장 김현준과 단원들, 자이언트 가수 단원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예술단을 운영하는데 힘드신 점이 있다면
더 크게 잘하려다 보니까 욕심을 내게 되고 자연스레 힘이 들더라고요. 경제적인 도움도 많이 필요하고 단체 등록도 해야되겠고요.


현재는 여러 뜻 있는 곳에서 후원도 받고 부족한 부분은 사비까지 털어서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음악봉사를 이렇게 열심히 계속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예전엔 친구들하고 가서 공연해야겠다고만 생각했어요. 전에도 했으니까 이번에 가서 또 해야겠다고. 그런데 음악봉사를 다니다보면 문화적 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시설장애인들, 재가장애인들 중에 말을 못하는 장애인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 장애인 친구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굉장히 열정적으로 변해요. 거기에 모든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노래를 하는 거예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이죠.


지난 2010년 창혜원에 연옥이라는 장애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말을 못했어요. 그런데 ‘사랑으로’라는 노래를 하더라고요. 발음도 안 좋고 못 알아듣겠는데 반주기 통해서 가사를 보니까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있지’라는 가사가 나왔습니다.


그 때 그 가사가 제 뇌리에 그대로 박힌 거죠. 공연 후에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거예요. 바로 제가 태어나서 할 일을 그때 찾은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장애인 음악봉사에 대한 확고한 마음이나 목숨 걸고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나 그 이후로는 이게 ‘나에게 주어진 길이구나’하고 인생의 과업이라고 여기게 됐죠.





▲특별히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제가 비장애인들에게는 마음이 안 가고 장애인들에게 마음이 많이 가더라고요. 장애인 중에서도 지적장애인요. 창혜원에 가면요, 장애인 친구들이 날 좋아해요. 날 사랑해줘요.


특히 김동문이하고 황순환이라는 장애인 친구는 매우 친밀하게 지내요. 이 장애인 친구들은 사소한 일이 있더라도 저에게 꼭 무슨 일이 있었다고 알려주거든요. 맨날 전화도 오고요.


그렇다고 제가 장애인이라고 장애인 취급을 하는 건 절대 아니예요. 허물없이 비장애인처럼 대합니다. 그러니까 장애인 친구들도 마음을 제게 활짝 연 것이겠죠.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도 있지만 당장 나도 내일부터 불의의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될 수 있어요. 한치 앞을 못 보는게 인간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좁은 편견보다는 나보다 조금 못하더라도 따뜻하게 장애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앞으로 활동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일반법인으로 단체등록을 준비 중이고요, 익산에 사랑원이라는 장애인 시설에 음악봉사를 할 예정입니다. 또 전주지역 장애인시설로도 활동반경을 더 넓히려고도 해요.


최종목표는 장애인 예술단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무용, 연극난타, 밴드까지 예술단에서 시설을 가지고 단체를 운영하고 싶어요.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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