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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풍요와 빈곤 사이
  • 익산투데이
  • 등록 2016-12-01 17: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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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가을이 서러운 사람들 있다.
단풍은커녕 뚝, 뚝 떨어지는 수은주에 눈물짓는 사람들 있다.
사회보장이 절실하지만 미치지 못하는 곳은 의외로 많다. 때로 너무 늦게 알아 그들에게 종종 미안할 때도 있다. 관청에서조차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보여주기 행정에 나설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재작년 가을의 일이다.
이웃 지자체에 사는 중복장애 학생을 알게 되었다.
다가올 추위에 보일러 상태는 어떤가 물었다. 고장인데 관청에서 고쳐주겠노라 했단다. 도배도 해 주겠대서 참 잘 되었다고 했다. 이발이며 다른 쪽 도움의 손들을 연결해 주고 다 잘 되었거니 했다.
이듬해 이월 초순, 난방은 잘 되고 있는지 묻다가 듣지 말았어야 할 소리를 듣고 며칠간 충격에 빠졌던 일이 있다.  
보일러 수리 전에 도배를 해줬으므로 그것으로 당해 연도 지원이 끝났다는 말에 그 가정은 보일러 가동 없이 겨울을 지냈다는 거였다. 어미도 없이 아비와 누이가 그만그만해서 큰 비용 들까 어디 물어보지도 못 하고 양말, 실내화, 목도리, 두꺼운 이불과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난 것이었다. 세면과 설거지 할 때 손 시린 것이 참기 어렵더라했다. 미리 확인해서 살펴주지 못한 잘못이 크지만 복지담당 공무원의 세심하지 못한 일처리가 못내 걸리는 부분이었다. 동절기 다가오는데 보일러 수리를 우선순위로 삼지 않고 도배를 우선순위로 삼다니, 그나마 방 셋에 거실 중 겨우 안방 하나 시늉을 낸 전시효과의 도배, 그걸로 도배가 완료되었다니,

말 난 김에 필자의 학창시절 이야기 한 도막을 첨언한다.
친구들의 군 입대 직후 고등학교에 입학, 만학의 길을 걷기로 했을 때 부모님의 연세는 71세와 61세, 농촌에서 내 땅 한 뙈기 없는 비농가의 품팔이 삶이 오죽했을까? 학교에서는 학비 감면을 위한 증빙서류를 요했고 관청에서는 필자가 18세 이상 성년으로 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어 증빙서류 대상에서 제외가 된다는 것이었다. 18세 이상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나 경제활동인구는 아니었으므로 재학증명서를 발급받아 첨부하면 비경제활동인구로서 해당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지 않겠나 싶었지만 담당 공무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옥신각신 하는 사이 출장에서 돌아오던 단체장이 다툼의 연유를 물었고 다시 한 번 단체장께 상황 설명을 드린 결과 익일 아침에 단체장을 찾아오면 즉시 해결해 주겠노라 했다. 익일 해당 서류를 받아들고 와 수업료를 제외한 육성회비를 감면받기는 했으나 내내 안 된다던 그 직원 손으로 떼어진 서류와 그걸 건네받던 머쓱한 손이라니,

감나무의 까치밥, 서정과 나눔의 미학 중 백미로 일컬을 만하다.
저 풍경에 연말연시 우리네 풍경을 하나씩 더 그려 넣는 건 어떨까?
지난했던 필자의 가을이 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당겨 씹은 생

그해 가을은 공평하지 않았다
이웃집 천 석지기 할머니의 곳간이 채워지는 동안
허기에 주저앉은 우리 집 지붕의 배앓이는 시작되었다
아랫목은 몰려든 빚쟁이들의 차지였고
마른 연못의 올챙이 떼처럼 안절부절
우리 식구들은 거드름을 피우는 그들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은 한데로만 모여들었고
비받이로 받쳐놓은 오지그릇을 비우러 간 넷째의 엄지발톱은
돌부리에 걸려 뽑혀지기도 했다
가을비는 그치지 않았다

잠은 어디서 자나요?
배앓이가 심해질수록 잠자리가 걱정이었다
하마, 이따 그치겠지 왼종일 퍼부었응께
긴가민가한 대답을 빗물에 쓸려보내는 어머니
올망졸망 우리 8남매를 키우신 저력으로
저녁밥 대신 빈 솥을 끓인 더운 물 한 그릇씩이 안겨졌다
꺼진 구들장 사이로는 한숨 섞인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봐요, 큰애랑 둘째한테서는 올해도 글렀나 봅니다
보낼라믄사 벌써 보냈지 기별한 지가 원젠디,
허기사 지들도 먹고 살어야 쓴께 기냥 도야지 팔아 이엉이라도 얹읍시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버지 곰방대 건너
밭머리 돼지우리에서는
구정물 통에 머리 처박은 씨돼지가
시레기 하나를 건져 올려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간신히 보리고개를 넘어온 저놈
명년 보리고개 당도하기도 전
꾸역꾸역 제 운명을 당겨 씹고 있었다
            <시선,52호, 2015,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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