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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타기
  • 익산투데이
  • 등록 2017-02-16 15:27:00
  • 수정 2017-02-16 15: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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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석구




외줄타기

어머니 가시고 5년
아버지의 괄약근은 끝내 스르르 힘이 풀렸다
아무리 조이려고 해도 겉도는 암나사
아버지 속곳이 누릉지다
오늘 하루에도 세 번,
아버지는 디미는 새 속곳을 계면쩍은 듯 한사코 밀어내신다
좀 전에 갈아입었노라,
도리질 하는 얼굴에 구린내 나는 억지가 노랗게 묻어났다
시들은 하체가 부끄러우셨을까
밀어내는 아버지의 몸뚱어리에 반강제를 써서  
벗기고 씻기고 입혀 드린 후
담요 한 장으로 깡마른 몸을 둘둘 말아드리고
살비듬이 노란 물과 섞인 속곳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비의 변명이 대야에 담겨진다
내가 달리 느그들한테 몹시 한 게 아니니라
새끼는 많고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어 그랬느니라
느거매에게 한 것도 거지반 그것이었느니라
의견충돌이 잦았던 것도 느덜 공부 못 시킨 것도
다 그것이었느니라
산 입에 풀칠하자고 그랬느니라
아들은 곧장 수도꼭지를 틀어댔고
다물지 못한 아비의 몸 사이를 비틀고 나온 생의 흔적이
포물선을 그으며 대야로 날아든다
눈물방울이 표백제를 녹이는 동안
아비의 변명에 섞인 절뚝거리던 삶이
서서히 하수구로 빨려 들고
어질거리는 현깃증으로 올려다 본 빨랫줄엔
위태로운 생이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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