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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古의 卓氏요 萬古의 光山”
  • 익산투데이
  • 등록 2017-03-29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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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光山 卓氏 익산 충신공파 忠孝展 건립

시조 지엽(之葉)에서 충효의 연원 상(祥)과 율 익산 충신공파에 이르기까지










익산 지역에서 탁(卓)씨 성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생소함이 덜 하다. 익산은 전국적으로 탁씨 성을 가진 집성촌 가운데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로, 현재 익산시 신동(서영마을)에 자리하고 있으며 17세 탁상(卓祥)과 그의 아들 탁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서하징음사기(西河徵音史記)에 후한의 현령으로 백성에게 선정을 베푼 탁무(卓茂)가 광무제(AD 25~56)로부터 포덕후에 제수된 기록이 있어, 광산 탁씨는 이를 선계(先系)로 보고 있다.


고려사에는 탁사정(卓思政 AD1010)이 헌종 1년 동북계도순사라는 직책으로 거란의 한기군사 3천명을 괴멸시킨 공으로 어사증승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의 기록을 볼 때 탁 씨는 1100년이 넘는 유구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하나의 본관을 쓰고 있는 광산(光山) 탁씨는 고려 선종(1084~1094) 시 탁지엽(卓之葉)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 탁지엽(호 學圃 시호 文成)은 학행으로 널리 알려져 종유(宗儒)로 추대되어 한림학사를 거쳐 벼슬이 태사(太師)에 이른다.





탁지엽은 문성(文成)이라는 시호를 받고 광산군(光山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광산(光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광산 탁씨 종중은 지금도 지금의 광주광역시(구 광산군)에서 종중 대제를 실시하고 있다.
시조 광산군 이후 그의 아들 도민(道民)은 대제학 부원군, 원광(元光)은 참정 부마, 사정(思正)은 판도판서, 종성(終成)은 대제학, 영(英)은 평장사, 문위(文位)는 대제학의 벼슬에 오른다.


이후 고려 말에는 평장사 탁영(卓英)의 손자이며, 대제학(提學)을 지낸 탁문신(卓文信)의 아들이자 경렴정집으로 문명을 떨친 8세 광무(光茂)(1330~1410)가 예의판서에 오른다. 광무의 아들 신(愼)은 세종 재위 시 의정부 참찬에 이르면서 가문의 광휘(光輝)는 절정을 맞아 명문거족의 자리를 굳건히 한다. 신(愼)은 학문적으로 높이 추앙받아 경북 안동 길안면 世德祠에 사향되었으며, 그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에 있다.






병란평정에 공이 컸던 15세 순창(順昌 1495~1594)은 경북 안동에서 세거, 가선대부 훈련대장으로 추서되고, 그의 넷째 아들 16세 세공(世恭)은 전북 전주에 와 자리를 잡는다. 세공(이조좌랑)의 아들 17세 상(祥 1544~1597)은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이 발발하자 수많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창의군으로 참전, 순천의 도원수 권율 장군을 도와 왜적과 분전했으며, 정유재란시 다시 참전하여 전북 부안 호벌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조정은 상(祥)의 충절을 높이 기려 1633년(인조 11년) 조봉대부 호조좌랑에 증직(贈職)하고 1816년(순조 16년) 정려(旌閭) 했다. 상(祥)의 정려각 내부에는 ‘충신 조봉대부 호조좌랑 탁공 상 지려’라는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이 있는 충효문은 익산시 비지정 문화재로 분류되고 있으며, 역사적 가치와 함께 지정문화재 지정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상(祥)의 아들 율(563~1597)은 전사한 부친의 시신을 수습코자 진중에서 적과 싸우다가 순절하니 조정은 효자로 정려(旌閭) 하였다. 세공(世恭)의 직계이자 상(祥)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는 익산의 광산 탁씨 익산 충신공파는 상(祥)과 율에서 시작되니 광산 탁씨 익산 문중의 시작이 충효에서 연원되고, 그 역사가 5백여 년에 이름을 알 수 있다.


만력 37년(1609년 광해군 2년) 율의 정려기에는 “사람이라면 모든 행실의 근원됨을 잘하는 사람 드물다네. 아비를 지키려는 간절한 정성이 죽음도 꺼려하지 않네. 죽음에 들어가면서도 살려내니 그 자랑스러운 아들이여! 높고도 높도다 그 행함이여, 예나 지금이나 둘도 없지”


광산 탁씨 익산 충신공파는 상과 율의 묘역을 지난 2001년 대대적으로 중수한데 이어, 올해(2017년)는 위패를 모신 사당 충효전(忠孝展)을 2억8천여만 원을 들여 건립, 숭모사업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광산 탁씨 족보인 경자보(庚子譜 선조 33년 편찬) 서문에는 “만고(萬古)에 탁씨요. 만고(萬古)에 광산(光山)이다. 이 족보를 보는 세상 사람들은 그 선업 구덕(舊德)에 필시 흥기하여 감탄을 할 자가 많을 것이다”고 정백곡은 기록했다. 이는 광산 탁씨 문중의 찬란함이 고려조와 조선 중엽까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광산탁씨 주요인물

고려조
탁도민(좌정승 대제학), 탁원광(선종부마 참지정사), 탁사정(판도판서), 탁종성(대제학), 탁영(평장사).

조선조
탁신(참찬, 문정공), 탁성(한성부윤), 탁연(의병장), 탁재윤(추밀원의관), 탁천성(한성부윤), 탁문위(대제학), 탁온(도승지), 탁순도(황주목사), 탁연(참찬), 탁자견(동지중추부사), 탁세형(사간), 탁용(공조참의), 탁미립(훈련원 판관), 탁중보(공조참판), 탁한성(승정원 도승지), 탁세복(훈련원 승지), 탁원립(근위장군), 탁만수(형조참판), 탁창한(공조참판), 탁상옥(형조참판), 탁하귀(공조참의), 탁성택(동지중추부사), 탁지엽(근위장군), 탁순택(한성판윤).

등과 및 음관(조선시대 등과 인물)
탁신. 탁성(참의), 탁중(이참), 탁관, 탁석행, 탁운한(병조참판춘추관사), 탁종술, 탁경수, 탁장호.

음관(蔭官)
탁광무, 탁신, 탁희립, 탁중, 탁관, 탁광수, 탁문상, 탁순창, 탁세공, 탁상, 탁임조, 탁영현, 탁기환, 탁세웅(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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