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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함성 익산4·19기념탑서 다시 울려
  • 홍문수 기자
  • 등록 2017-04-27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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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마백역사연구회 주최 4·19기념식 개최






지난 19일 익산역 4.19기념탑에서 익산마백역사연구회(이병기 소장) 주최로 제57주년 4,19 기념식이 개최됐다.


‘4.19혁명정신 계승하여 자유민주주의 꽃 피우자’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순국선열 및 전몰호국영령과 4.19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묵념에 이어 격려사, 축사, 그리고 만세삼창 순으로 이어졌다.


행사에서는 1960년 4.19일 시위대에 직접 참여 한 당시 김호영 전북농대 학생회장, 왕상희 중앙대 학생대표의 생생한 증언이 있었다.


이병기 소장은 기념사에서 “오늘은 4.19혁명이 발발한 지 57주년이 되는 날 이다”며,  “4.19는 자유를 열망하고 독재를 타도하려는 학생들의 값진 희생과 헌신으로 이룬 위대한 민주역사이다”고 의미를 되새겼다.


이 소장은 “1960년 4.19일 익산에서는 전북농대, 중앙대, 원광대 등 약3천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며, “당시 구 경찰서에서 익산역에 이르는 도로는 자유당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학생들의 열망과 환호성으로 가득해 익산은 민주화에 있어 타 지역의 모범이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23살 중앙대 학생대표로 시위에 참여했던 왕상희(81세) 씨는 격려사에서 “4.19당시 서울에서 시위에 참석했다”며 “4.19는 3.15 부정선거에 대항하며 민중시위가 시작됐다. 당시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 파편이 박힌 채 마산앞바다에 떠올랐던 사건이 발생하자 그때부터 봉기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왕씨는 “4.18일 7시경 동대문에서 성북동으로 이동 중 시위행렬 맨 후미에서 화랑부대를 결성한 이정재, 유재광 등이 차량으로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는 바람에 현장에서 80여명이 죽거나 부상당해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급박했던 상황을 전하며 “4.19일 낮12시경 당시 경무대(현. 청와대) 경찰서장 곽영규 경무관이 군복을 입고 지휘를 했는데 태극기를 앞세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쏴서 상당수가 희생됐다”고 밝혔다.


왕씨는 “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하자 처음에는 공포탄인줄 알았는데 시위대 앞줄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복학생이 안고 넘어지는 바람에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 그 현장에서 중앙대 학생 13명이 사망했다”고 참혹했던 순간을 회고하며 “당시 4.19 시위에 참여했던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서 행사는 이영희 익산의병기념사업회장, 김영배 도의원의 축사와, 김영준 전북향토문화연구원 부회장의 만세삼창으로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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