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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외면 (조석구 /전북 작가회의)
  • 편집국
  • 등록 2017-06-26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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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흙이었던 금 간 항아리,
캐내지 말았어야 했다
땅심과 하나이게 수십 년을 더 묵혔어야 했다
곰삭은 것들에게선 가시지 않는 냄새가 배는지
김장철 품앗이 장단 타넘으며
간 절여 묻어둔 사십 년 누이의 내력이
비릿한 젓갈내로 훅, 끼쳐온다

 

입 하나 덜었으니 술잔 더 내라는 중신아비였다
구부러진 허리로 방과 부엌을 기어 다니며
징하디 징하게 낼름거리는 혀 앞에
두어 채의 이불 값이 백반(白礬)으로 놓이고 나서야
부리나케 제 구멍 찾아 달아나던 중신아비
석 달 만에 모사가 드러났지만
먼저 간 이불과 뭉크러진 꽃잎 값은 끝내 회수하지 못했다

 

중혼(重婚)인 줄 모르고 붉은 꽃잎을 열어주었다던 누이
고추장 된장단지 방패삼아
비암 굴을 벗어나다 물린 발뒤축엔
부풀어 올라 허옇게 곰팡이가 슬어있었고 
엄니는 이 빠진 틈새의 상처도 아랑곳없이
탱탱 곪은 비암독을 빨아댔다

 

달포를 앓다 일어난 누이가 봄날
제비 날개에 묻어가 소식 없던 스무 해 동안
봄마다 빨랫줄에 가슴을 널어놓던 엄니
제비 발등을 붙들고 발톱만한 소식이라도 듣자하던 엄니
성도 이름도 남이 되었단 소식을
기어코 얻어낸 어느 해 봄날, 하루해는 길기만 했다

 

캐내어진 금 간 항아리에 테두리를 감았다
흙을 채우고 나무가 된 누이를 옮겨 심었다
새순이 돋자 허청허청 허방을 디뎌쌓는 누이
디딤 발아래 괴악스런 것들 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애써 외면하고 가는 솔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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