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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페미니스트
  • 편집국
  • 등록 2017-07-10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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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귀숙 익산여성의전화 사무국장

 

오년 전, 나는 [페미니즘의 도전]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으며,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한 적이 있었다.

 

같이 했던 사람들은 그 책의 저자가 페미니즘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사례를 들어 잘 집어내어 설명해 주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고 했었다.


한참 뒤, 나는 민주노총 전국본부에서 초청된 그녀의 여성학강의를 수강한 이가 정리한 강의록을 읽게 되었다.

 

그 강의요지는 남성중심 사업장에 왜 여성주의가 필요한가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었다.

그즈음 내겐 고민이 있었는데, ‘우리지역 노동조합은 여성관련 4대 폭력(성매매, 성폭력, 아내폭력, 성희롱)을 조합원의 삶의 질 향상 측면에서 단체 협상 안에 넣어 교육을 시켜야 되지 않을까‘의 문제여서, 나는 그녀의 강의에 힘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나는 7월 6일에, 그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교육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틀의 교육
 프로그램 중, 그녀의 강의는 무려 3시간이나 배치되어 있었다.

드디어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고, 나는 교육장으로 가기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조그만 키에 연한 보라색두건을 쓰고, 화장기가 전혀 없는 이가 타고 있었다.    

몇 초 동안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무척 조심스럽게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같은 층에서 내린 그녀가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목적지를 찾는 동안, 나는 교육장에 들어와 교육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낯선 이가 교육장으로 들어오더니 강단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녀가 내가 그토록 궁금해 했던 정희진이였다니…. 난 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강의를 시작하기 전, 자신이 최근에 몸이 안 좋아서 살이 많이 쪘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의를 하는 그녀의 말투가 매우 빨랐지만, 전달하려는 내용이 정확해서였는지 내겐 쉽게 느껴졌다.

가끔은 버벅거리는 모습도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이야기 속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흥분한 상태일 때 나타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강의도중, 최근 대전지역에 일어난 학생들의 집단자위행위에 대해 젠더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교현장에서는 교권침해로 정리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그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그녀는 다양한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때, 수강생 한 명이 그녀의 이야기에 반박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내 생각에는 그 문제제기가 상당히 우려스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상황을 알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은 외부 강사가 이런 난감한 수강생을 맞이할 때, 대부분은 문제화 되지 않도록 강의를 마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젠더문제를 통해 사회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강사양성 과정에서 이 정도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것인지를 주최 측에 제기하며 강의를 중단하고 나갔다. 


그 과정을 지켜본 한 시간여 동안,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멍해졌다.
현실에서 적당하게 타협하고, 불편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눈감는 일들이 많아질 때, 이런 가부장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그녀는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투사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고독하고 외로운 현재의 페미니즘을 직접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배제와 소외를 경험하며, 심지어 지나치게 예민하기 때문에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는 페미니즘이라 할지라도, 그녀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있는 한, 페미니즘은 앞으로도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주변에 권력을 주는 운동으로,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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