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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릉의 대왕묘는 선화공주가 주인?
  • 탁이석 기자
  • 등록 2017-07-24 15:06:00
  • 수정 2017-07-26 11: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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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열쇠 다음 달부터 푼다

올 11월까지 대왕묘 발굴 조사
피장자 선화공주 논란 규명 기대

 


백제 무왕(武王·재위 600~641년)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는 백제 후기 고분 ‘익산 쌍릉’의 비밀을 풀기 위한 발굴 조사가 시작된다.


익산 쌍릉은 대왕묘와 소왕묘 두 무덤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한 때 청주 한씨가 자신들의 조상묘로 주장하며 석물을 설치하는 등 논란은 계속되어 왔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뚜렷한 징표가 없어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 23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 익산시 석왕동에 위치한 백제 후기 고분인 쌍릉(사적 제87호)의 대왕묘 발굴 작업을 다음 달부터 시작한다.

 

발굴 작업이 올 11월에 마무리 되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소왕묘 발굴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발굴은 일제 강점기인 1916년 조사 이후 100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약식 조사 형태로 진행된 조사에서 두 무덤은 이미 도굴이 되어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치아 일부와 목관이 발견되어, 이를 바탕으로 문화재청은 유물과 현실의 구조 및 형식이 부여 능산리 고분과 비슷하여 백제 후기의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지난해 1월 국립전주박물관이 소장 유물 정리 중 발견된 일제 때 출토된 대왕묘 유물을 조사한 결과 기존 학설을 뒤집을 만한 결과가 나왔다. 유물 정리 중 무덤 석실에서 나온 치아 4점이 발견 되었는데, 이 치아가 20~40살가량 한 사람 성인 여성의 어금니와 송곳니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대왕묘가 무왕의 묘라는 통설이 성인 여성 한 사람의 치아가 발견됨으로써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대왕묘에서 발견된 그릇의 형태를 조사한 결과 백제 토기가 아니라 7세기 전반의 신라 토기와 유사하다는 결론도 나왔다.

이는 백제 시대 무왕의 묘라는 학설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학계 일각에서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왕묘의 피장자는 여성이므로 무왕의 무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백제 무덤에서 이례적으로 신라 토기가 출토된 점을 근거로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 공주가 무덤의 주인이라는 견해도 제기됐다.


대왕묘가 선화공주의 묘로 확인될 경우 학계에 미칠 파장이 크다. 설화 속 왕비의 실체가 확인되는 반면, 소왕묘의 주인과 백제 무왕이 묻힌 곳의 행방이 묘연해지기 때문이다.


이수정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 학예연구사는 "일제강점기 때 대왕묘가 정식으로 정밀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쌍릉의 피장자나 역사적 실체를 제대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지금껏 명확한 근거 없이 대왕묘가 무왕의 묘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역사적 사실과 문화재라는 물리적 증거는 함께 가야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 발굴 조사가 쌍릉 피장자의 명확한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차원임을 밝힌 대목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조사에서 별 다른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발굴 조사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지난 1916년 야쓰이 세이이치가 당시 극심한 도굴로 인해 발굴한 만한 제대로 된 유물이 없다는 기록을 남겨 둔 것을 근거로, 야쓰이 세이이치가 발굴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발굴 조사를 정교하게 진행해 무덤 조성 기법과 피장자의 실체를 확실히 규명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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