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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아요.”
  • 편집국
  • 등록 2017-10-18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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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인숙(익산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


이런 집이 있다.


부인의 집안인 김 씨네 조상을 모시기 위해 김 씨 부인의 남편, 사위들이 추석 전날 옹기종기 모여 나물을 무치고 부침개를 부치고 송편을 빚는다.


김 씨 부인과 딸은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보다가 그것도 심심하면 당구를 치러나간다.


저녁나절쯤 돌아와서 음식 만드느라 허리가 반쯤 꺾인 그들에게 저녁 밥상을 차리라고 말한다.


다음날 아침 김씨의 남편과 사위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차례상을 차린다.


김씨부인과 딸은 다 차려진 상에서 사과와 배의 위치를 바꾸거나 생선의 머리를 왼쪽에서 오른쪽을 돌려놓는다.


김 씨 부인과 딸은 차례 상에 절을 올리고 난 후 아침을 먹고 성묘 채비를 한다. 그 사이에 남편과 사위는 성묘에 갈 음식을 담고 설거지를 한다.


추석아침이 이렇게 지나간다.


이런 집, 어떠한가? 무엇인가 이상한가? 맞다 이런 집은 없다.


내가 보내고 온 추석의 풍경을 남녀만 바꿔서 그려본 것 뿐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 명절음식을 제대로 준비 못하는 며느리를 탓하는 할머니에게 어린손녀가 말한다.


“정말 이상해요. 박 씨네 조상을 모시는 건데 일은 죄다 다른 성을 가진 여자들만 하고”


성 평등은 어려운 것도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에 남녀를 바꿔 상정에 보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면 그게 평등이다.


결혼한 여성이 추석날 보내는 당연한 풍경을 기혼남성의 경험이라고 가정해 놓고 보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가 보인다. 


‘남자들은 성폭행을 당할 위험이 있으니 밤길을 걷지 마세요.’


‘남자들은 데이트 상대자가 어떠한지 모르니 처음 만날 때는 상대 여성의 차를 타지마세요.’


‘여자는 죄다 여우입니다. 조심하세요.’


‘남자들은 아름다워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남성의 가장 중요한 일은 집안일과 자녀양육이죠.’


우리 흔히 듣는 말을 남녀만 자리를 바꾸어 보았다.


많이 이상한가? 당연한 듯 쓰고 있는 이런 말들이 낯설고 이상해져야 한다.


밤거리가 위험하면 특정 성의 행동을 제약 할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이 안전할 수 있도록 조처해야한다.


한 개인의 특징을 아름다움으로 한정시켜버리면 그 개인이 가진 수천가지 다양한 모습들은 중요성을 잃고 소멸된다.


처음만나는 사람의 차는 얼마든지 탈 수 있다.


피해자의 행동이 경솔하다고 말하는 대신 가해자를 엄격히 처벌해서 재발을 막아야한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특정 대상에게 행동하지마라는 언사는 피해를 당했을 때 그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다는 말을 에둘러 하는 것이다. 


 추석날 아침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시어머니는 이 일 쭉 했으니 당연히 하는 거고, 네가 맡을 때는 간단하게 해라”  


“당연한거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촉촉해진 시어머니의 눈빛이 며느리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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