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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우울, 대2병
  • 편집국
  • 등록 2017-12-27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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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 이재성 한의원 원장


대학만 들어가면 맘대로 살기로 한 ‘머임’군.

정말로 대학 들어와 맘대로 살았다. 놀러 다녔다.

수업은 출석 체크만 하고 도망갔다.

여자 친구도 사귀었다. 동아리에서 으뜸 술꾼으로 등극했다.


2학년 들어와서 화들짝 놀랬다.

놀랄 때마다 ‘이건 머임?’을 반복했다.

전공과목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영어 실력도 공짜로 늘어나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건 취업률이었다.

대학 오기 전에 취업률 60%로 알고 들어왔는데 아닌 거 같았다.

선배들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우울했다. 세상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학하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취업 더 잘 되는 학과는 없는지 기웃거렸다.

스펙 좋은 학생들 앞에 좌절도 매일매일..

지나가는 고등학생들이 너무 좋아 보였다.


인터넷을 보니 대2병이라 한다.

그래.. 병.. ‘머임’군은 차라리 병이기를 바랬다.

근데 원인을 보니 자아정체성의 위기라 한다.

대충 보니 니 탓이라고 하는 듯.


맞다. ‘머임’군의 대2병은 자아 정체성 문제다.

자아 정체성은 내 스타일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결혼하기 싫은데 부모 때문에 억지 결혼해야 하면 자아 정체성이 위기에 빠진다.

내가 짓밟힐 위기다.


내 생각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게 아니다.

3단계로 갖춰간다.

1단계는 사람 관계 이해다.

가족 · 직장 · 익산시 · 국제 관계를 이해해 간다.

2단계는 삶의 목적 이해다.

너그러움 · 정의로움 · 배려 · 현명함을 목표로 삼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몸 이해다.

내 몸의 호흡기, 소화기, 근육량, 비뇨기를 알아가는 거다.


즉 대학생은 나와 사회를 얼추 이해한 사람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도 거의 알고 있다.

몸도 충분히 튼튼하다.

내 맘대로 살 자신감을 갖췄다.

그래서 대학생은 자아 정체성을 얼추 갖췄다고 한다.

근데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려는 내가 위기에 빠졌다.

취업해서 내 맘대로 살아보려고 대학 왔는데 취업할 데가 없다.

내가 한심해진다. 우울해진다.


취업할 데가 없는 게 근본 원인이다.

취업 잘 되던 시절에는 이런 병 없었다.

그래서 ‘머임’군 ‘니 탓’이 아니다.

일본도 장기 불황 시절에 유행했던 병이다.

지금 취업 잘되는 일본은 다시 대학생들 얼굴에 웃음이 넘친다.

전문가들은 10년 지나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취업 문제가 해결될 거라 한다. 


대2병의 예방은 정보 공개다.

부풀려진 취업률을 믿고 대학 갔다가 2학년 때 실체를 알고 놀랜다.

취업한 졸업생 중 정규직 취업은 정말 적다.

취업 안 되는 줄 알고 가면 우울함은 일찍 오지만 멘붕에 빠지지는 않는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큰 것이다.  


간단한 해결법은 없다.

취업률이 올라가지 않는 한 대학생들은 우울하다.

하지만 견딜 수는 있다.

견디게 하는 힘은 부모에게서 나온다.

취업 못한다고 눈 흘기지 않으면 된다.

예전과 취업 방식이 달라졌다고 이해하면 된다.

예전에는 대학 졸업하면 취업했다.

지금은 30살까지 취업 시험보고 안 되면 다른 것 찾는 세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살면 대 2 병 정도의 우울함이 긴 인생에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부모가 10년 기다림으로 웃어내지 못하면 대2병이 대인기피증으로 발전한다.

부모를 피한다. 부모를 피하는데 어떤 사람인들 쉽게 다가가겠는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거 같은 불안에 막혀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다.
사회가 나서서 기죽이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N포 세대’라고 부르기만 하고 고개 돌리는 게 기죽이는 거다.

‘N포 세대’로 불릴 만큼 힘든 사람들이라고 안아야 한다.


당연히 청년 수당 줘야 한다.

공짜로 먹여 살리자는 게 아니다.

한 달에 20만원. 취업난 해결될 때까지만 주자는 거다.

그 돈만 있어도 방안에 틀어박히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방안에 들어앉기 시작하면 대 2 병은 발전한다.

우울한 느낌 정도였던 게 우울증으로 널뛰기를 한다.

잠 못 들다가 늦게 일어나 학교 못 가는 일이 한 달 넘어가면 우울증이다.


병 있다고 답이 꼭 약은 아니다.

건강보험 제도를 처음 만든 의사 장기려 선생님은 처방전에 닭고기라고도 썼다.

못 살던 시절, 영양실조 환자에게 약 말고 닭 두 마리를 처방했다.

그리고 실제로 닭고기를 사주기도 했다.

대2병의 처방은 부모와 사회의 관심이다.

부모는 10년 웃으며 기다리고, 사회는 청년 수당으로 호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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