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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를 흘린 게 아니야?”
  • 편집국
  • 등록 2018-02-14 10:04:00
  • 수정 2018-02-14 1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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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숙 / 익산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


겨울바람이 매섭던 2월 첫날 전주지방검찰청 앞에 50여개 시민단체가 모여 집회를 했다. 집회참여자로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2010년 10월 경, 한 장례식장에서 당시 법무부 간부로부터 여성검사가 강제 추행을 당했다.


그 후 당사자로부터 어떠한 사과나 연락도 받지 못했고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운 사무감사 지적, 검찰총장경고와 인사발령을 받는 등의 업무상 불이익을 받아왔다. 그리고 지난 1월 피해자인 서 검사는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을 언론에 공개했다.


내가 참여한 집회는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의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하고 검찰 내 성폭력 2차 피해방지를 요구하는 시위였다. 서 검사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인터뷰에서 성폭력이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 8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법률전문가로 성폭력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을 하는 검사 역시 성폭력피해자가 되었을 때는 자신 탓은 아닌지 되짚고 되짚었다는 것이다. 무려 8년 세월동안을 말이다.


이번 주말에 여비서와 남자 상사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를 보았다. 비서는 직장동료에게 스토킹을 당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남자상사는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여지를 흘린 게 아니야?”


여지를 흘리다. 이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엇이 ‘여지’가 되는 것일까? 상대방에게 웃는 것, 말을 건네는 것, 커피를 타주는 것, 문자메시지에 답하는 것, 상대전화를 받는 것, 만나자는 요청에 동의하는 것, 저녁식사에 응하는 것, 회식자리에서 술을 따르는 것, 이런 것이 여지일까? 이게 소위 ‘꼬리를 흔든’것인가?


피해자가 한 행동은 ‘여지’가 아니다. 피해자는 위계와 강압적 요구가 아닌 적극적인 의지로 “나를 안으세요. 입맞춤 하세요. 당신과 성행위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직장 내 성폭력사건에서 ‘여지’를 해석하는 기준은 피해자보다 지위가 높은 가해자의 입장에서이다.


그 입장에서 조직원은 피해자를 비난한다.  피해사건을 알렸을 경우 피해자는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여지’를 준 품행이 바르지 못하고 조직에 오명을 준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서 검사 역시 이 오래된 레파토리를 또 다시 겪고 있다. 무려 검사인데도 말이다.


드라마 말미에서 상사는 비서에게 ‘여지를 주었다’가 자신의 망상과 잘못된 생각이 빚어 낸  못된 말이라 사과한다. 상사의 사과는 조금 달라져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공기처럼 널려있는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폄하, 여성을 생물학적 신체에 가두고 능력과  잠재력을 보지 않는 시도들, 남성중심의 상명하복질서가 빚어낸 문제를 나 역시 모른척하고 당연시 여겼다고 이런 사회구조에서 만들어진 편견에 나 역시 편승했다고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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