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나보다 어려도 배울게 있다
  • 편집국
  • 등록 2018-04-11 10:42:00

기사수정


최은희 / 익산여성의전화 인권강사


중학생 성교육 강의를 앞두고 고민을 했다. 항상 같은 교육을 하지만 학생들에게 졸리지 않고 한명이라도 더 들을 수 있게 전달해야 하는 부담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침 중학생 아들이 얼마 전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았다고 자랑하듯 얘기 했던 게 생각나 물어봤다.


“우리 아들은 학교에서 어떤 성교육을 받았어? 뭐가 알고 싶었고 무엇이 기억나?”

“어........몰라 하나도 기억이 안나”

“피임교육은 기억나?”

“어, 동영상으로 봤어”


교육생이 기본적인 성교육은 받아도 실제로 알고 현실에서 대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받은 교육은 있지만 남아있는 기억은 없다는 말이 나에게 훅 들어왔다. 이 성교육은 누구를 위한 건지, 나는 여태 마음 놓고 내가 들려고 싶은 이야기로만 강의한건지 고민되었다.


내 남편이 그렇듯 학교에서 배운 교육은 남아 있지 않고 친구들끼리 전해 내려오는 문화가 전부인줄 아는, 잘못 인지되어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의 결과로 익산여성의전화 인권강사팀에서 우리가 교육해야 할  청소년 에게 우리의 강의가 어땠는지, 학생들에게 필요한 강의 내용인지, 부족하고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모니터링을 했고 이 내용으로 새로운 강의안을 만들었다.


모니터링 결과 성평등에 대한 인권의식과 현실적인 성관련 지식을 교육받고 싶어 했다. 첫 경험 때, 임신했을 때, 첫아이를 낳은 후 신체증상과 심리적 변화에 대한 내용과 남녀의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알고 싶어 했다.


책에서 글로  배우는 느낌이 아닌 이웃사촌 강사들의 경험에서 나온 평범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살아있는 교육을 받고 싶어 했다. 내용을 종합해서 강의를 해보니 교육생의 관심도와 만족도가 자연스레 올라갔고 “오늘 교육 내용 너무 좋았어요.” 라는 칭찬도 들었다.


나를 돌아보니 우리 자녀에게 “엄마는 오픈 되어 있어. 언제든 뭐든 물어봐” 라고  했어도 나의 아이들은 전혀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불투명포장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험담이지만 아들이 자위를 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손사래를 치며 그런 걸 왜 하냐며 말했다.


진심인 걸로 난 받아들이고 넘겼는데 얼마 후 자신의 방에서 자위를 하고 내게 들켰다. 아들이 당황도 했겠지만 참 부끄럽고 창피했을 것이다. 나도 다 큰 아들 방을 들어가면서 왜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어버렸을까 후회해도 늦은 때였다. 내가 미안해야 하는데 반대로 아들이 미안해하며 거실로 나와서 뭐 도울 일 없을까 하며 기웃기웃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과 세대 차이가 난다고 문제를 쉽게 넘기려 했던 나의 안일함은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계기를 통해 젊은 세대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사는 것이 이 사회에서 왜 필요한지, 내가 스스로 언어와 행동이 일치하고 지식인으로서 열린 사고로 산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가 나를 보고 진심으로 일치한 삶을 사는구나라고 느껴지는 삶을 사는 게 진짜이구나라고 되돌아보았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