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원불교 김팔곤 원정사 열반
  • 정용하 기자
  • 등록 2018-08-16 10:18:00

기사수정

고려대 졸업 후 원불교 귀의, 중앙교구의회 의장 등 역임


종교연합운동과 새마을운동 외 대내외적으로 많은 사회적 활동을 한 묘산 김팔곤(도융) 원불교 원정사가 지난 14일 오전 4시경 열반하였다. 세수 86세, 법랍 53년


묘산 김팔곤(도융) 원정사는 1933년 11월 11일 전남 화순군 남면 절산리에서 부친 김법중과 모친 이법은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묘산 원정사는 유가적 전통을 이어받은 부모의 철저한 교육 속에서 신중한 성격으로 자랐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묘산 원정사는 우주만유를 관통하는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에 1953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1957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 후 졸업하였는데, 긴 시간동안 철학을 통한 탐구의 여정 끝에서도 근원적 진리를 향한 갈망을 해소할 수 없었고 한동안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원불교’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서광주 교당을 방문하게 되었고, 원불교 전서 ‘일원상의 진리’장을 읽고 크게 경탄하여 원불교에 귀의하였다. 


묘산 원정사는 1971년 원광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진리 탐구를 시작하였고, 이때 맺은 원광대학교와의 인연은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원광대학교 교무처장,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 UCLA대학 객원교수,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원광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며 원광대학교 발전을 위한 헌신으로 이어졌다. 


영산회상의 옛 인연을 만나 대도정법을 한 눈에 알아본 묘산 원정사는 대종사의 일원주의, 정산종사의 삼동윤리, 대산종사의 종교연합운동이야말로 새 시대 인류를 구원하는 확실한 처방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종교연합운동을 추진하는데 모든 생을 바치리라.’고 서원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서원을 향한 그의 발걸음에는 쉼이 없었으니 원기 63년부터 67년까지 원불교 청년회 전국연합회장을 역임하는 동안에는 새마을금고 설립을 위한 준비위원회장으로서 전무출신 가정을 도울 수 있는 새마을금고 설립에 노력을 기울였다.


74년에는 대산종사의 명을 받들어 ‘종교연합운동추진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한 소위원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소위원회의 기초안 정관이 수위단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또한 75년부터 77년까지 청운회 전국연합회장을 역임할 당시 새삶운동기금 2천만원을 조성했을 뿐 아니라 대종사탄생 백주년 성업봉찬회에 5백만원을 희사하였고, 74년부터 92년까지 원불교종교연합운동 추진위원회 사무총장 및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도 2천만 원의 종교연합운동추진기금을 조성했다.


85년부터 88년까지 남중교당 교도회장, 86년부터 89년까지 중앙교구교의회 의장 등을 역임하면서는 농산 김준 선생과 함께 ‘새삶회’를 창립하고 2대 회장을 맡아 기반을 다졌는데, 이는 대산종사의 하명을 받들어 새마을 지도자 연수원으로 파견근무를 나가 김 준 선생의 진리 운동을 보필한 것이었다.


이 때 원불교 교법정신을 전하기 위한 강의도 진행하는 등 교단의 대내외적 발전을 위해 평생토록 잠시도 쉬는 바 없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남중교당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오직 수양과 적공에 정성을 다하다가 노환으로 2018년 8월 14일 오전 4시에 열반하였다. 


장례는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원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04호. 발인은 8월 16일(목) 오전 8시 원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04호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익산 금마 원불교 영모묘원이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최신뉴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