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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이 한 장의 사진11
  • 익산투데이
  • 등록 2019-10-30 12: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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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이 한 장의 사진11

1965년, 원광대생 한일회담 반대시위

 

 ▲ 신귀백(영화평론가. 익산민예총 회장).   ⓒ익산투데이
▲ 신귀백(영화평론가. 익산민예총 회장).   ⓒ익산투데이

 

당시는 단과대학이던 원광대생들의 1965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이리역 방향으로 진출하기 전, 경찰의 저지가 안 보이는 조금은 낭만적인 청년들의 모습이다.

 

교문 위에는 ‘간첩자수 신고기간’이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왼쪽에 근심스레 바라보는 사람들은 교직원으로 보인다.

당시 원광대학교 쪽은 거의 이리시가 아니었다. 북일면으로 외곽이었다.

 

이 사진 속 교문이 첫 번째 원광대 정문으로 지금은 원광보건대학 정문이다. 원광대학교는 황등석으로 지어진 우아한 돌집에서 법과대학과 문과대학으로 출발한다.

 

인문적 철학적 바탕에서 오늘날 거대한 메디컬센터를 가진 한국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한일협정이 체결되기까지 14년 걸렸다. 미국원조가 대폭 삭감된 상황에서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투자재원이 절실한 군사정부는 일본자본의 유치라는 절박한 필요성에 따라 한일회담의 조속한 타결에 집중했다.

 

중국견제라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일본자본의 해외진출 욕구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대일청구권문제 등 굴욕적인 회담 추진 과정에 대한 전국적 반대투쟁이 거세게 일어났으나 군사정권은 6월 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후, 6월 22일 한일협정을 조인한다.

이 사진마저 없었다면 원광대나 익산시의 역사는 매우 쓸쓸했을 것이다.

신귀백(영화평론가. 익산민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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