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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이 한 장의 사진

기사 등록 : 2019-11-27 13:24:00

익산투데이 iksan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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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이리국민학교 졸업식

 

 ▲ /사진=익산민예총 대표 신귀백(영화평론가).   ⓒ익산투데이
▲ /사진=익산민예총 대표 신귀백(영화평론가).   ⓒ익산투데이

 

이리초등학교 교가는 ‘배산에 피는 구름 마동에 뜨는 해’로 시작한다.

 

이리초의 역사는 1913년 일본인 오하시(大橋)라는 영국사 주지스님이 사립학교로 출발하여 이를 교육당국이 정식 인수하여 1915년 이리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다.

 

후일 일출(日出)초등학교 그리고 해방 이후에 이리국민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중앙초는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였다. 주로 이리시에 사는 학생들이 다녔으니 그 졸업생이 몇 만 명이다.

이리국민학교에서 1941년 동산초등학교가 두 학급으로 분가한다. 중앙국민학교 재 개교를 위해 1946년 여학생 15학급을 분여한다.

 

그러니까 해방 막 되고서는 이리국민학교는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가 된 적도 있다.

 

후일 남창국민학교도 이리국민학교에서 나뉘는데, 당시는 ‘제금났다’고도 했다.

1971년 소위 뺑뺑이 직전에는 각 학년별로 10개 반이 있었다. 그런데 6학년은 12반까지 있었다.

 

중학교 입시 재수생이 한 클라스 더 있었던 것. 그러니까 한 울타리에 약 5천 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다.

 

화장실은 수도꼭지는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요즘 면 단위 인구가 겨우 2천 명을 넘는데 말이다.

이 사진 속 1961년 졸업식은 1949년생들의 이리초등학교 45회 졸업사진이다.

 

교문 앞에 졸업 축하 아치를 설치하고 학부모들끼리 찍은 사진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포토존이다.

 

한복에 핸드백을 든 학부형들의 때깔이 곱다. 아마 육성회 간부 정도 하시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분들 모두 90세 전후일 테니 세상에 안 계신 분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진을 보내주신 시민들 덕에 12월 6일부터 익산역에서 익산교육 100년 사진전을 개최함에 감사드립니다.